제 1장 캐러화하는 젊은이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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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공간에서의 캐릭터


2010년 11월 20일자 조간 아사히신문에 '캐릭터, 연기하기 지쳤다キャラ、演じ疲れた' 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되었다. 최근 수년 간 아이들이 '캐릭터' 란 단어를 쓰는 것을 자주 듣긴 했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그렇게 캐릭터를 계속 연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에 지치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 기사의 요지였다.

다음은 그 기사를 인용한 것이다.


"'저 캐릭터를 바꾸고 싶어요. 이대로는 제가 바보가 될 것 같아요.' 산인 지방[각주:1]의 어느 중학교에 설치된 상담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임상심리사 이와미야 케이코 씨에게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방문했다. 그녀는 친구들로부터 딴죽을 걸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신비한 느낌의 천연 캐릭터天然キャラの不思議ちゃん[각주:2]' 를 연기해 왔지만 본연의 자신과는 동떨어진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지쳐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캐릭터를 바꾸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그밖에도 '괴롭힘당하는 캐릭터いじられキャラ[각주:3]' 를 연기하여 반에서 자신의 입지[각주:4]를 만든다든지 '독설 캐릭터' 라 불리던 여자아이가 "최근에는 제가 독설을 하길 주변 아이들이 기대해서 힘들어요" 라 고민하는 등의 사연들이 이어졌다. 아니나다를까 그 '롤모델' 의 출처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주고받는 대사와 행동이었다."


요 몇년 동안 학교 공간에서의 캐릭터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여러 입장에서 지적되고 있다. 어느 조사에 따르면 교실에는 학생 수만큼의 캐릭터가 존재하고 각기 미묘하게 차별화되어 '캐릭터가 겹치지 않도록' 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로 '괴롭힘당하는 캐릭터' '오타쿠 캐릭터' '천연 캐릭터' 등이 알려져 있다. 어떤 캐릭터로 인식되느냐에 따라 아이가 교실 공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캐릭터 없이는 더이상 평화롭고 즐거운 학교 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 이것은 호들갑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그렇다, 이제는 교실 공간은 '캐릭터 생태계' 라 말할 양상을 드러내기에 이른 것이다.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이 존재하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 위한 '서식지 격리[각주:5]' 가 있다. 그렇다면 교실 공간을 지배하는 '적자생존' 의 원리는 어떤 것일까.

교실에서의 캐릭터 성립을 고찰할 때 이해해둘 배경 지식이 두 개 있는데, '스쿨 카스트' 와 '커뮤니케이션 격차' 이다. 스쿨 카스트부터 설명해보자. 교실에는 꼭 여러 개의 그룹이 있다. 이들 그룹 간에는 분명한 상하관계가 있고 극단적인 경우 개개의 학생들이 그룹을 넘어 교류하는 것조차 없을 정도이다.[각주:6] 이러한 학생들 사이의 서열 제도를 가리켜 '스쿨 카스트' 라고 한다. 당연히 유래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이다. 초등학생 때는 이러한 '신분차' 는 그렇에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춘기를 맞는 중학교 이후에는 이러한 계층화가 급속도로 진행된다.

이때 소위 '같은 신분' 인 그룹 안에서 역할로서의 캐릭터가 나누어지는 것이다. 캐릭터 배분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캐릭터는 본인이 스스로 인정하는 성격의 방향과는 미묘하게 다른 경우도 있지만 한번 정해진 캐릭터는 거의 변경되지 않는다. 캐릭터로부터 일탈하거나 하는 행동을 하면 그걸 이유로 무시하거나 열외시키는 등의 따돌림으로 발전할 경우조차 있다. 즉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캐릭터란 거의 강제되는 것이다.

스쿨 카스트의 구성은 대개 다음과 같은 식이다. 카스트 상위(1군, 혹은 A랭크)를 점하는 학생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은데, 축구나 야구 등 발군의 운동신경(단 아무 운동이나 해당하는 건 아닌 듯하다)을 갖고 있고, 사교적이고 친구가 많고 모임의 분위기를 지배하며 유머 센스가 있고, 몸매나 옷차림을 포함한 용모가 뛰어나고, 이성 관계가 윤택하고 성 경험도 있다. 따라서 카스트 하위의 학생을 괴롭혀 웃음거리로 만들거나 싫은 일을 강요할 힘이 있다.

카스트 하위(3군, C랭크)는 이와는 정반대로 생각하면 된다. 운동치이거나 문화계[각주:7]이고 외모가 두드러지지 않고 이성 관계도 빈약하고 특히 오타쿠스런 취미가 있을 경우 카스트 최하위 확정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참고로 지식이 풍부하다든지 공부를 잘하는 것은 요즘은 인망과는 전혀 관계없는 능력으로 치부되는 듯 하다.[각주:8]

2군 또는 B랭크는 상위층과 하위층의 중간 계급으로 대다수 학생들은 여기 속한다.

이러한 계층은 유동성이 적고 일단 카스트가 결정되어 버리면 적어도 일년 - 즉 반이 또 바뀔 때까지 - 은 안착하게 된다. 모리구치 아키라[각주:9]이러한 카스트 분위를 정하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이들은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나 반 배정을 받았을 때 각 사람의 의사소통 능력, 운동 능력, 용모 등을 재며 첫 한두달 동안 학급에서 자신의 위치를 탐색합니다. 이때 상위 계급을 차지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일년간 '왕따' 를 당할 위험에서 벗어납니다.  거꾸로 하위 계급밖에 차지할 수 없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고위험군으로서 일년을 보내야 합니다. [각주:10]

여기서 특히 주목할 것이 '커뮤니케이션 편중주의' 이다. 좀 더 모리구치 아키라를 인용하자면 

"스쿨 카스트를 결정하는 최대 요인은 '커뮤니케이션 능력' 이라 생각합니다. (단 고등학교의 경우 학교의 레벨에 따라 학력이나 싸움 능력도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각주:11]

그렇다. 이제 아이들의 대인 평가는 거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능숙함 여부만으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명백한 이상異常 상태이다. 내가 중학생이던 삼십 년쯤 전의 교실은 요즘 교사라면 틀림없이 ’선택성 함묵증'[각주:12]이나 '광범성 발달장애[각주:13]' 란 진단을 내렸을 게 틀림없을 정도로 말이 없는 학생이 두세 명은 있었다. 확실히 그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낮았을 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말이 없어도 구기 운동을 잘한다든지 그림을 잘 그린다든지 하는 점을 평가받아 다른 학생들이 괄목하고 관심을 가졌다. '옛날이 좋았어' 같은 안이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학생들 사이의 대인 평가의 기준은 그때가 훨씬 다양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커뮤니케이션 외의 재능은 괄목의 여지가 거의 없다.

한때 아이들의 준거 사회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갖던 '공부' '그림' '글솜씨' 같은 재능은 이젠 대인 평가의 축으로는 기능을 상실했다. 심지어는 상황에 따라 그런 재능을 발휘하여 캐릭터에서 일탈했다는 이유로 카스트 분위가 추락하는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


'자기탐색' 유형自分探し系, 캐릭터의 기원으로 보자면


젊은이들의 커뮤니케이션 양상이 변해간다는 것을 내가 실감한 건 십 년 정도 전에 쓴 어떤 원고가 그 계기였다. 모 잡지의 기획으로 시부야와 하라주쿠에서 표본 조사를 위해 몇 사람의 젊은이들과 인터뷰를 하고, 그들에게서 어떠한 '부족 집단' 적 차이가 있는지의 여부를 검토해 보려 할 때였다.[각주:14]취재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간단히 말해 시부야 유형의 젊은이들은 유난히 친구가 많고 사교성이 높았으며 하라주쿠 유형은 대인관계가 그렇게 넓지는 않으나 자신의 목표를 확실히 가졌다는 것의 차이가 분명히 나타났다. 표본 사례의 수가 각각 세 명씩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것을 현장 조사의 성과라 칭하며 일반화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 인터뷰 경험은 젊은이들을 고찰할 때의 하나의 구조적인 시점을 형성했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현대의 젊은이들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기준으로 대략 두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자기탐색' 유형과 '은둔형 외톨이ひきこもり' 유형으로 말이다.

미리 말해두자면 어디까지나 두 유형은 가역적이다. 고정적인 성격의 분류와는 다르다. 동일한 개인이 장소에 따라 '자기탐색' 유형처럼 굴거나 '은둔형 외톨이' 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당장 나부터 명실상부한 '은둔형 외톨이' 유형임을 스스로 인정하지만 어울리는 상대나 상황에 따라 '자기탐색' 유형처럼 굴고 마는 경우도 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자기 이미지의 안정성은 많은 부분에서 반비례의 관계에 놓여 있다. 이런 경향은 특히 사춘기·청년기에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기 쉽다. 예를 들어 은둔형 외톨이 유형의 젊은이는 일반적으로 의사 소통에 소극적이거나 서툰 대신 비교적 안정된 자기 이미지를 갖고 있다. 반면 자기탐색 유형의 젊은이는 높은 사교성을 보유한 대신 자기 이미지가 불안정해지기 쉽다.

따라서 각각 사회 적응 단계에서 좌절하고 낙오되어 갈 때의 방향성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은둔형 외톨이 유형은 글자 그대로 방 안에 틀어박히거나 노숙자가 될 위험이 있다. 이것은 의사 소통의 단절을 한층 철저히 하는 방향이다. 반면 자기탐색 유형은 종교나 주술에 심취하거나 자해 행위로 발전할 염려가 있다. 이쪽은 반대로 의사소통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의존이 폭주를 일으켰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캐릭터란 자기탐색 유형을 위해 있는 말이다. 자기 이미지가 정착되지 않았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별개의 소통 공간에서 그때그때 장소와 상황의 분위기를 따라 캐릭터를 만들어내거나 또는 살짝 조정하는 재능은 자기탐색 유형만의 장점이란 것이다. 즉 '가면을 잘 쓰기 위한 재능' 이란 말이다. 반면 은둔형 외톨이 유형은 고유한 자아 외의 다른 캐릭터를 만든다든지 하는 방면은 참패를 맛볼 수밖에 없다. 왜냐면 그들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패배의식이 짙고, 오히려 자기 이미지가 확립되었기에 장소와 상황에 따라 캐릭터를 갈아끼우는 건 서투르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 말수가 없는 것이 캐릭터성을 갖는 경우도 있긴 있지만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이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학교 공간에서 압도적으로 상위를 차지하는 것은 '자기탐색 유형' 의 학생들이다. 과잉적으로 사교성이 높은데다 쉽게 동질 집단을 형성하고 학급의 중심이 되어 지배적인 권력을 휘두른다. 반면 '은둔형 외톨이' 유형은 동질 집단의 응집력이 약하고 각자 고립되기 쉬워서 학급 내에서도 아웃사이더로 겉도는 존재가 되기 쉽다. 결국 스쿨 카스트 내에서 그들의 존재는 무시당하거나 교실 내 담화의 소재로 굴려지는 정도의 가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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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번역문에 대한 모든 권리는 출판원 ちくま文庫와 저자 斉藤環에게 있습니다.


  1. 역자 주. 山陰地方, 츄고쿠 지방에서 동해에 접한 지역으로 보통 톳토리 현, 시마네 현을 일컫는다 [본문으로]
  2. 역자 주. 천연天然이란 캐릭터 특성 중 하나로 '순진하고 세상의 때가 덜 타 천진난만하고 낙천적인 모습을 보이는 성향' 을 일컫는다. [본문으로]
  3. 역자 주. 따돌림을 당한다는 게 아니다. 서문에서 언급한 만담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 일본은 준거 공동체에서도 '기가 세고 딴죽을 거는 역할' 과 '기가 약하고 딴죽을 받아주는 역할' 의 구분이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본문으로]
  4. 역자 주. 이바쇼居場所。직역하면 '있을 곳'.근대화 이후 사회경제구조의 개편과 함께 빠르게 개인주의가 스며들며 형성된 일본인의 정서 코드. 단어를 좀더 구체적으로 풀자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 안식할 수 있는 곳' [본문으로]
  5. 역자 주. 원문 : 棲み分け。영어로는 habitat isolation. 생활양식이 유사한 복수의 동물 개체 또는 개체군이 터전을 시간적, 공간적으로 나누어 차지한 채 생존하는 현상. [본문으로]
  6. 도이 타카요시土井隆義 「캐릭터화하는 / 캐릭터화되는 아이들キャラ化する / される子どもたち 」이와나미 북클릿岩波ブックレット에서 발췌 [본문으로]
  7. 역자 주. 일본 공교육 하의 학생들의 방과후 활동部活動은 크게 체육계, 문화계(연극, 서예, 다도 등 정靜적 활동), 귀가부(부활동을 안함)로 나뉜다 [본문으로]
  8. 역자 주. 우리나라에 공부벌레란 말이 있듯 일본에도 공부에만 매달리는 학생을 두고 주로 다른 학생들이 비꼬는 말로 카리벤カリ勉이있다. [본문으로]
  9. 역자 주. 森口 朗(もりぐち あきら、1960年6月1日 - ). 일본의 교육평론가 [본문으로]
  10. 모리구치 아키라 「따돌림의 구조」(신쵸신서新潮新書)에서 발췌 [본문으로]
  11. 모리구치 아키라 「따돌림의 구조」(신쵸신서新潮新書)에서 발췌 [본문으로]
  12. 역자 주. 場面緘黙症, Selective Mutism. 가정 등에서는 문제없이 말하지만 사회적 불안증으로 학교, 유치원 등특정 공간에서 발화를 못하는 증상. [본문으로]
  13. pervasive developmental disorders, PDD. 사회성, 커뮤니케이션 기능 등의 발달 지체가 특징인 다섯 가지 정신 및 행동장애군의 총칭. [본문으로]
  14. 사이토 타마키 『젊은이의 모든 것若者の全て』,PHPエディターズグループ 수록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