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의 일요일春の日曜の一日

夫天地者 萬物之逆旅 光陰者 百代之過客(부천지자 만물지역려 광음자 백대지과객) 
대저 천지는 만물이 묵어가는 여관이요 세월은 백대의 나그네

而浮生若夢 爲歡 幾何(이부생약몽 위환 기하)
떠도는 인생 꿈과 같으니 기쁨이 얼마나 되나?

古人 秉燭夜游 良有以事 (고인병촉야유 양유이사) 
옛사람들이 촛불을 잡고 밤에 노닌 것도 실로 까닭이 있었음이라

況 陽春召我以煙景 大塊暇我以文章 (황 양춘소아이연경 대괴가아이문장) 
하물며 화창한 봄날이 아름다운 경치로 나를 부르고 조물주가 나에게 문장을 빌려줬음에랴

이백이 지은 문장에 드러난 봄을 읽다보면 이제 나는 저절로 그림을 그리지 않을 수 없다. 거기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날씨도 쾌청하다. 곧장 어제 약속한 하야시의 집을 방문했다. 온몸이 봄의 고동으로 들썩이고, 다리는 호기롭게 대지를 밟는다. 고풍스러움 그 자체인 하야시의 집 에 들어서자, 만면에 기쁜 빛을 띤 채 그는 들고 있던 이젤을 단단히 챙겨 밖으로 뛰쳐나왔다. 키가 다른 두 사람이 똑같은 이젤과 똑같은 목탄지를 손에 든 채 하얀 운동화를 신고 제2중학교 부근을 목적지로 하여 출발했다. 가는 길에 어딘가 학교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어 하야시에게 물어보았더니 “*훈맹원ー아니 보육원이겠지.” 라 대답했다. 과연 얼굴이 새까만 이삼십 명의 아이들이 제각각 한 쪽에선 세발자전거를 타고 다른 쪽에선 그네를 타며 놀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얼굴 상태가 원만하지는 않다. 새삼 부모님께 감사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길 한쪽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가로질러 나아가니 나무들 사이로 제2중학교의 교사校舍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사팔눈으로 본들 제2중학교 교사는 기후岐阜중학교 교사보다 훌륭하다. 설비부터 시작해서 모든 게.
제2중학교 교문을 지나면 묘지와 맞닥뜨린다. ‘여기 우리 할머니가 묻혀 있다’ 는 생각을 하고 있자, 갑자기 작년 가을 사카호기坂祝 땅에서 나뭇잎과 함께 쓸쓸히 져 버린 누님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위독한 와중에도 내게 걱정스럽게 “학교를 쉬면 안 된다” 며 돌아가라고 소리치던 누님의 목소리도 귓가에 맴돌았다. 아련한 생각을 잊으려고 초원에 풀썩 주저앉았다. 멀리 북쪽을 바라보니 낙성식을 눈앞에 둔 제2카노加納소학교가 선명한 주홍 빛깔을 발휘하고 있다.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엷은 세피아 색으로 배경을 수놓고 있다. 그를 원경遠景으로 놓자 중경中景으로는 왼편에 조선인들의 가옥이 있고 옆에는 보리밭의 녹음이 조화를 이룬다. 그 사이를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발밑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아, 그야말로 충분한 절경이다. 나는 연필을 집으려 했다. 그러나 하야시는 고개를 젓고는, 나와 등진 채 자리를 잡고 연필을 꺼낸다. 갑자기 뒤에서 자전거 벨이 울린다 싶더니 아이들의 무리가 “야, 너희들 여기 있었느냐?” 운운하며 자전거를 몰고 왔다. 의아한 채 가만히 있자니 다가와서는 “이야,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하고는 사라져갔다. 아무리 봐도 연배는 얼마 나지 않음이 틀림없다. 바로 옆까지 와서야 다른 사람인 줄 알았으니까. 조금 있자니 돌아와서는 한 번 더 사과하고 떠났다. 시골 사람들의 공손함을 살짝 느꼈다. 아무리 떨어져 있다 한들 기후에서 0.5리 거리인데 기후 사람들의 정서와는 천양지차다.
혼자서 감상에 빠져 있자니 하야시는 이미 그림에 몰두해 있다. 하야시는 머리가 좋아서 구도를 빨리 선정한다. 나로선 턱도 없다. 한 장에 칠 전짜리 목탄지도 똑같이 이 년 묵은 한 장에 십 전짜리 목탄지보다 상태가 나쁘다. 아무리 색을 덧칠해도 그에 비례해서 종이에 스며들지 않는다. 종국에는 환멸감과 비애가 느껴졌다.
시계를 보니 그리기 시작한지 두 시간 반이 지나 열두 시를 넘겨 있었다. 그림은 대충 완성되었다. 봄날 햇빛은 길고 한가로웠지만 우리들의 공복 사정은 그렇지 않다. 하야시는 늘 “배고픔을 초월하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된다” 고 말했는데 실로 그 말은 영험하기 그지없어, 짐을 챙겨 돌아갈 무렵에는 앉아 있을 때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몸 상태는 다소 나빠졌지만 말이다. 돌아가는 길에 제2중학교에서 운동을 하자고 정한지라, 담장을 넘어가 운동장에 있던 원반을 던지며 주고받았다. 어떻게 해도 손에서 원반이 빠져나가는지라 “이러니까 선수가 따로 있는 거지. 다 잘 던지면 선수도 있을 수 없는 법이니까.” 라 생각하기도 했다. 또 카노에서는 연이 유행인지 내 키보다 큰 것만 둘이서 함께 날렸다.
운동장 근처에 올라와 있기만 했는데 열 시 가까이 되었다.
놀이는 끝났지만 집에 돌아가기가 싫었다. 공복인데다 무거운 짐까지 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시간 후 우리는 다리를 질질 끌며 걸어갔다.
아, 즐거우면서도 서글펐던 봄날 하루여.

*訓盲院, 농아와 맹아들을 가르치기 위한 기관

코지마 노부오, <어느 봄날의 일요일春の日曜の一日>

코지마 노부오 초기작품집小島信夫初期作品集 공원, 졸업식 公園 卒業式 수록